혜인이가 바닥에 테이핑된 그림을 보고 테이프를 붙이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나 테이프를 떼는 것은 5살 혜인이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혜인이는 자신이 원하는 테이프 길이를 나(플레이리더)에게 요구했다. 

"(손가락 4개를 펼치며) 4만큼 잘라주세요."

혜인이는 잘라준 테이프가 말려 서로 엉키지 않게 조심하며 벽에 테이프를 붙이기 시작했다. 

혜인이가 테이프를 붙이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원하는 색깔의 테이프를 붙이기 시작했다.

고은이는 빨강색 테이프를 벽에 붙였다. 그런데 테이프의 접착면끼리 엉키면서 평면이 아닌 입체적인 모양이 되었다.

고은이는 자신이 붙인 것에 만족하였고, 나에게 자랑하였다. 나의 눈에는 갓 태어나 형태가 미완성인 아기 물고기처럼 보였다.

플레이리더: 아기 물고기 같다. 그럼 상어가 잡아먹으러 갈까? 그래도 괜찮아?

고은: (기대에 찬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플레이리더: (파랑테이프로 상어 입부터 커다랗게 만들며) 상어가 나타났다. 상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어. 

                 빠밤~ 빠밤 빠바바바바바 (죠스ost를 부른다.)

고은: 상어가 나타났어. (주변에 아이들에게 알린다. 플레이리더가 상어를 그리는 것을 보며 긴장 또는 기대에 찬 미소를 짓는다.)

혜인: 그렇다면 내가 꼬리를 묶을 거야. 선생님, 상어 못가요.  내가 묶었어요. (상어 꼬리지느러미 부위에 연결된 테이프를 가리킨다.)

플레이리더: 에고, 상어가 잡혀버렸네.

상어를 묶어버리고 싶은 혜인과 상어가 좀 더 무언가를 했으면 하는 고은.

플레이리더: (테이프를 잘게 잘라 상어 입에 붙이며) 상어는 뾰족뾰족한 이빨도 있어야 돼. 

고은: 나도 잘라줘요.

플레이리더: 어느 만큼?

고은: (상어 이빨을 테이프로 가리키며) 이렇게요.

고은은 플레이리더가 잘라준 테이프를 상어 입에 붙여 이빨을 완성시켰다.

플레이리더: (노랑테이프로 상어 뱃속에 문어를 그리며) 상어 뱃속에 문어가 있대. 문어를 잡아먹었거든.

                 (문어의 눈을 테이프로 붙이며) 문어가 울고 있대. 어떻게 구해주지?

혜인: 그러면 (초록테이프로 상어 입에서 문어까지 연결한다.) ......해서 .......구했어요.

플레이리더: 줄이야? 줄로 문어를 구한 거야?

혜인: (큰소리로) 네.

잇다

<상어가 나타났다>의 이야기와 그림은 개인이 완성한 것이 아니다. 고은이가 붙여 놓은 빨강테이프가 시초가 되어 플레이리더의 상상력을 자극하였고,

그에 또 혜인이와 고은이가 자극을 받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각자의 상상력과 행위가 즉흥적으로 주고 받으며 테이프의 선이 

이어져 그림이 되고, 상상력이 이어져 이야기가 되었다.

넘다

당일 오후에 초등생 친구들과 부모님들이 오셨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테이프를 여기저기 마구 붙이는 것을 보고 테이프를 낭비하지 말라는 말을 하셨다.

낭비... 부모님들 눈에 낭비하는 것으로 보인 것은 아마 테이프가 본래 용도가 아닌 것으로 사용되다 보니 낭비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데 크레파스를 낭비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테이프의 본래의 용도는 어떤 물건을 붙이는 것이다. 그러나 테이프가 아이들과 만나 선을 넘었다. 

테이프는 더 이상 어떤 물건을 붙이는 보조적인 역할이 아니라 드로잉의 적극적인 주체가 되어 벽과 바닥을 캔버스 삼아 날아다녔다. 

말려져 있던 테이프가 아이들에 의해 떼어질 때 마다 들리는 찍_찍__ 소리는 자유를 누리는 테이프의 함성처럼 들렸다. 

아이들이 놀이를 끝내고 기관으로, 집으로 돌아갔지만 놀이터에는 아이들 움직임의 흔적들이 놀이터 곳곳에 남아있다.